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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위로 흐르는 나의 이야기 : [아무튼, 술]

텍토민 2024. 11. 17. 20:11
누구나 처음 마셨던 술의 순간을 기억하지 않을까요? 저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했던 첫 술자리가 떠오릅니다. 그 때는 막연히 술에 대한 호기심 혹은 어른이 되는 의식 같은 느낌으로 마셨던 것 같습니다. 애써 술에 대해 포장하려 했지만 입 안 가득 느껴지던 쌉쌀한 맛은 얼굴을 찡그리게 할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술은 점점 다양한 의미를 건네줬던 것 같습니다. 대화의 촉매제가 되기도 했고,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던 술은 단순히 음료의 개념을 넘어섰기에, 어떤 관계를 지속해야 할까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김혼비 작가님의 [아무튼, 술] 입니다.

 

아무튼 술 책표지
소맥은 진리라고 했던가

퇴근길, 골목 끝에서 익숙한 간판이 보였다. "문득" 소주 한잔이 간절했다라고 말하기엔 내 발걸음이 이 쪽으로 이미 향했었다. 퇴근 후 차분하게 소주를 곁들인 저녁을 보내고 싶었다. 들어서자마자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맛있는 안주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고 활짝 웃으며 반겼다. 자리에 앉아 별다른 고민 없이 소주 한 병과 조개술찜을 주문했다. 술 안에는 하루를 풀어낼 힘이 있는 것 같다. 얼음처럼 차가운 병을 따서 잔에 천천히 따르며 생각했다. 어쩌면 오늘은 이 순간을 위해 달려온걸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놓였다.

 

첫 잔을 입에 대는 순간이 늘 기분이 좋다. 소주는 맑고 단순하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 차가운 쌉쌀함이 왠지 모를 위로처럼 느껴져서 좋은 것 같다. 소주의 매력은 화려하지 않은 소박함. 그 소박함이 완벽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주를 한잔 마시고 자박자박한 국물에 소복히 쌓인 조개를 한개 집어 입에 넣었을 때, 이 단순한 조합이 나를 온전히 채워준다. 특별한 이야기가 필요 없는 공간, 그저 하루를 흘려 보내며 술잔에 마음을 던지는 곳. 필자는 이런 술과의 관계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위로해줄 사람이 없더라도 위로가 되는 순간.

술이란 결국 혼자 마시든, 같이 마시든
늘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술은 언제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늘 친구와의 깊은 대화가 아닐까 싶다. "한잔하자" 딱히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서로 사는 것이 녹록치 않아서 거절할 수 없지 않을까. 처음엔 그냥 그런 자리로 시작한다. "요즘 어때?", "뭐 늘 그렇지" 소주잔이 몇 번 오가고 안주가 반쯤 줄어들 무렵,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실, 요즘 말야"를 시작으로 직장에 관한 스트레스라던가, 개인적인 문제라던가 등 고민이 되는 얘기들이 줄을 잇는다. 듣기만 하다가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로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소주병은 하나씩 늘어간다. 술잔에는 내 기억과 추억들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기쁜 순간, 슬픔을 나누는 자리, 혼자만의 고독을 채우는 시간이든 간에 모든 이야기가 녹아들어있다. 어쩌면 술은 사람을 위한 작은 무대가 아닐까.

 

술이 사람을 바꾼다기 보다는,
원래의 나를 드러나게 한다고 믿는다.

흔히 "술을 마셔봐야 그 사람의 본성을 안다"고 한다. 평소라면 하지 못했을 얘기를, 혹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술이 더 들어갈수록 감정을 하나둘씩 꺼내게 된다. 그런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창피할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 진짜 마음임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술 탓이라며 외면하려하기 보다는, 그런 나를 인정하고 마주보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보면 취기를 빌려 하는 말과 행동은 "사실, 나 그동안 힘들었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 힘듦을 상대방에게 알아달라고 요구하기 보다는 스스로 마주보고 개선하는 게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 되지 않을까.

 

김혼비 작가님의 [아무튼,술]은 술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흥미롭고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읽는 내내 "맞아, 나도 그랬었어"하고 공감했던 순간들로 가득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술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넘어, 술이 우리 일상에 어떻게 스며들어있는지, 또 우리가 술과 함께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담백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냅니다. 술은 어쩌면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음식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느꼈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나'와 '술'의 관계를 어떻게 지속하는 지에 관한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라는 것 입니다. 술과의 관계를 오래도록 '행복하게' 유지하고 싶으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