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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시와 같았던 기억의 갈피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by 잔나비

텍토민 2024. 11. 24. 20:24
"잔나비 알아?"라는 질문에 "알지, 원숭이 띠. 그건 왜?"라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나이가 들었단 얘기죠. '잔나비'의 노래는 한창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에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워낙에 쟁쟁한 시기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2014년도 데뷔라서 찾아보니 소유/정기고의 썸, 박효신의 야생화, 태양의 눈코입이 차트에 있던 시기.) 이런 가수가 있구나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2019년도에 나온 오늘 소개할 노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등장하면서 입지가 탄탄해지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책상 위에 놓인 잔나비 인형들과 학용품들
멤버들이 모두 원숭이 띠라고 하더군요.

달랠 길 없는 외로운 마음 있지
머물다 가셔요.
외로운 마음은 쉽게 달래지지 않는다. 그 마음이 어떤 것에서 비롯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친구와 오랜만에 술을 한잔 하거나,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 순간에도 외로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상대방과 그냥 아무 얘기 없이 가만히 있을 뿐인데 안정감이 드는 순간도 있다. 외로운 마음이라는 건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마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머물러 있는 동안에 애써 달래려 하기 보다는 좋은 점도 있지 않을까 곰곰히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책상에 앉아 있는 남자
손편지를 작성하는 건 인고의 과정이 필요한 법

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서
남몰래 펼쳐 보아요.
기억을 한권의 책처럼 묘사한 모습이 일품이다. 지금도 종종 예쁜 책갈피를 탐할 때가 있다. 옛날에 부모님들은 꼭 낙엽이나 네잎클로버를 코팅해서 책갈피로 활용했었던 기억이 있다. 책갈피는 읽다가 멈춘 부분을 표시하는 기본적인 용도로 사용된다. 그런 용도의 책갈피를 꾸미고 싶고 예쁜걸로 사용하고 싶었던 이유는 뭘까. 어쩌면 책을 읽는 순간이 조금이라도 더 특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는 모습
옛날 영화 시작에 이런 장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마주보던 그대로 뒷걸음 치면서
서로의 안녕을 보아요.
그 날 하루가 너무 좋았어서, 헤어지기 아쉬울 때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서로가 인사를 해야 할 시점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머뭇거리는 모습이 퍽이나 웃겼던 것 같다. 결국 지하철 시간이 다가오고 서로 멀어지면서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보던 경험. 같은 경험이지만 이 노래에서는 이별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평안과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을 담고 있다. 같은 글이지만 사랑의 시작에도, 이별의 시작에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이 묘하게 씁쓸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곡은 깊은 감성과 서정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곡입니다. 가사 한 줄 한 줄이 시처럼 느껴져서 삶의 다양한 순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레트로한 감성의 멜로디에 감미롭고 섬세한 음색은 따뜻하면서도 강렬한 위로를 받는 느낌입니다. 잔나비의 노래는 듣고 있자면 동화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주는 것 같습니다. 공감을 선사하면서도 이런 느낌을 준다는 건 "당신의 삶도 이렇게나 동화처럼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잠들기 전에 듣는 다면 동화같은 꿈을 꿀 수도 있지 않을까요?